최근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출간이후 인문학이 출판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다. 인물과 사상 출판사에서도 이런 인문학 인기에 편승하여 출간한 것인지 오랜 기획에 의해 출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의 싹"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우리 인문고전 12선 이란 부재를 달고출간했다.
일단 이 책은 인문학박물관 이라는 곳에서 2009년 12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우리 인문학의 역사 교실 1기 강의를 수록한 책이다. 그래서 책 12권의 간단한 소갯글과 강의녹취록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내 기준으로 보면비추천이다.
강연 내용이 나빠서 만이 아니라 편집과 출판의 의도를 마치 자신들이 인문학의 정도를 걷고 있는 것처럼 위장한 -아니 자신들 스스로 정도를 걷고 있다여길지도 모르지만- 때문이다.
이 책 서문을 보면 "여기 모인 글들은 서로 다른 이념과 지향을 담고 있다"고 겸손하게 표현하였지만, 책의 전체 흐름은 하나의 이념을 지향하며 현 정부와 이승만 대통령 이래의 남한 역사 자체를비딱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의도는 강연자와 청중의 질의문답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정말로 강연에서 이렇게 묻고 답한것인지 아니면기획 편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승만 정권의 비정통성부터 뉴라이트까지 몰염치까지 그야말로 비판일색이다. 사실 요즘 세상에 이런 것 가지고 지적한다면 소위 진보로부터 수구XX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 책을 비추천한 것은 이 책의 성향만을 문제삼았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어떤 성향의 학자들과 청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유로이 강연하고 질문 받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 내는 것은 자유고 그 책을 읽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럼 이 책에서 내가 가졌던의문과 불만을 지적하겠다.
첫째,이 책은 우리 인문학의 싹을 틔운 최초의 고전이라며 12권의 책을 소개한다. 첫 강의 이중환의 <택리지>를 제외하면 다른 저작들은 대부분 사회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아나키즘을 바탕으로쓰여진 책들이고 저자의 상당수는 월북했거나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사망한 사람들이다. 즉이중환을 제외하고 우리 인문학의 싹을 틔운 인문학 고전을 쓴 사람들은대부분 1900년대 초반을 살다간 사람들이라는 소리인데 우리역사에 그 이전에는 인문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소리인가 묻고 싶다.
둘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는 오제연 교수가 제5강 박열 <신조선혁명론>에 대해 강의한 부분을 한 번 보자.
"다만 테러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어요. 왜냐하면 테러는 억압받는 약자가 자신을 억압하는 강자에게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에요....(중략)...실제로 우리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테러 활동을 해왔어요.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우리가 의거 라고 부르는 안중근, 윤봉길 등의 행동도 박열의 계획과 본질적으로 같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테러를 무조건 부정해서도 안 되고 폄하해서도 안 됩니다....(중략) 우리가 자꾸 테러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하면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볼 때 우리 자신이 할 말이 없어지는, 궁색해지는 상황이 생깁니다."(p159-160)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충격에 휩싸였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다니, 도대체 이 강연을 한 사람은 테러가 무엇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테러에 관해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고 하지만 테러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무차별적으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하는 폭력행위를 말한다. 즉 알 카에다 와 안중근 의사가 행한 일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안중근 의사는 조선총독이라는 특정 대상을 목표으로 한 것이고, 무역센터를 비행기로 들이 받아 버린 행위는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선정하였기에 그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론적 무장이 투철하신 교수님이라면 내 말이 잘못 되었다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안중근 의사를9.11때 비행기를 몰고 무역센터에 돌진 한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와동급으로보는 시각을 가진이런 글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셋째, 이 책이 원문이나 해석본을 읽는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강연록인데정작 강연에서 저자의 일생과 사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저술은 일부만 다루어져 있는데다그 강의 내용에 대해서도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이여성, 김세용의 <숫자조선연구>에서 일제시기에 한반도의 일본인과 조선인 학령아동의 1930년대 통계치를 가지고 "조선인 학령아동 약 245만 명 중 19.9%만이 보통학교에 다니고 있는 반면 일본인 학령아동 6만 7,000여 명 중 99%가 소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며 "비교해볼 나위조차 없는 형편"이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p.89-90)고 하면서. 이것이 <조선총독부통계연보>의 자료를 바탕으로<숫자조선연구>를만든 의의라고 설명하며, 조선통치의 선전수단을 삼기위해일본인이 통계연보를 작성하였지만 이여성, 김세용은 그 통계 속에서 일본인만 제대로 교육받고 조선인은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어 일제를 비판하는 자료를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학자로서 좀 위험해 보인다. 당시 조선에 나와있던 일본인들의 경제사정은 좋은 편이었으니 그 자녀들이 학교를 대부분 다닌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일본 본토의 진학률에 대한 비교가 없고, 일제시기 이전의 조선의 교육실정과의 비교가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이런 수치만 가지고 이것이 일본이 조선을 갈취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증거였다고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하나, 제4강 이만규의 <조선교육사>를 설명한 p.126-127을 보자. 조선교육사는 시대구분을 원시시대, 부여와 한을 봉건 바로 이전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봉건시대로 구분하고 이 시대 구분에 따라 다시 왕조별로 구분하였는데, 5장을 보면 남북조시대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를 남조, 발해를 북조로 하여
원시시대부터 교육사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삼국시대 교육에서 화랑도교육을 우리 고유의 교육으로서 중요하게 여겼다, 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통일신라와 발해를 완전하게 우리 교육사로 복원시켰다 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발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여 그 시조라는 대조영이 우리민족인지 중국인지 말갈인지도논란이 많은데-강사도 이렇게 발언하고 있다-놀랍게도 이 책은 발해의 교육사까지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아쉽게도 이 강사는 발해에 어떤 교육이 있었다고 써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다. 그러면서 이 책을 실증사학에 입각한 최초의 조선교육사로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청중과의 질문코너에서 돌연 청중의 발언으로 이런 부분이 나온다.
북한의 역사학자 박시영 씨가 <발해사>를 썼잖아요. 중국이나 일본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발해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박시영 씨가 잘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중략)...신라시대 교육에 대해서도 이만규가 잘 지적한 것 같습니다. 신라가 당나라를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자주성 같은 것이 완전히 상실돼서 이미 이때 모화사상에 길들었으니까 신라의 교육은 철저히 잘못됐다고 볼 수 있겠죠.
이 질문이 끝나고 강사(정미량)은 이렇게 답하다. "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 책이 얼마나 편향된 시각을 가졌는지 더이상 지적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이만 줄이겠다.
한마디로 이책은 좌파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문학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학문적으로는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인기에 편승하여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책 제목에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이란 문구를 넣던가 적어도 책 뒷면 소개에 "정체불명의 인문학이 횡행하는 지금,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아독존식의표현은 삼가했어야 했다.
새로운 시각이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거리는 있으므로 별점은 2개나 준다
www.weceo.org
아, 우리 지성사에도 큰 흐름이 있었구나!
인문학의 싹- 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인문고전 12선 은 국토와 이념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토양에서 싹을 틔워 서구의 사상사만큼이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가지를 뻗어온 우리 인문학의 성장과정을 거꾸로 추적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인문고전 들을 소개한다. 이 인문고전들은 우리 인문학의 역사를 정리하고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인문학박물관에서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엄선한 것으로, 남한의 인문학과 북한의 인문학을 통합해 우리의 사상사 로 재탄생시켰다.
지리, 문명, 노동, 문학, 철학, 통계, 신화, 교육 등 우리 인문학의 거의 전 분야를 대표하는 고전들을 텍스트로 삼아 인문학박물관에서 대중강연을 벌인 12명의 인문학자들조차 아, 우리 지성사에도 큰 흐름이 있었구나!하고 놀랄 만큼 이 고전 목록은 역사적 개연성과 인문학적 깊이를 지닌다. 각각의 책들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결국 나와 너, 개인과 민족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하나의 지향점을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인문학자 12인의 입을 빌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거대한 사상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발간사
새롭게 읽는 우리 인문학의 역사- 인문학박물관 ‘우리 인문학의 역사 교실’ 1기를 마감하며
(인문학박물관 학예실장 강성원)
1강 이중환, 택리지 (1751)
- 한국적 이상향을 추구한 인문지리서(강사: 양보경)
2강 안확, 조선문명사 (1923)
- 민족사와 문명사 그리고 정체성 찾기(강사: 류시현)
3강 이여성,김세용, 숫자조선연구 (1931)
- 식민지와 통계의 내밀한 관계 분석(강사: 서호철)
4강 이만규, 조선교육사 (1947)
- 한국교육사의 고전, 민족교육사의 고전(강사: 정미량)
5강 박열, 신조선혁명론 (1948)
- 혁명과 사랑, 그리고 아나키즘(강사: 오제연)
6강 신남철, 역사철학 (1948)
- 한국 최초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의 현실인식과 각오(강사: 김재현)
7강 김동석, 뿌르조아의 인간상 (1949)
- 상아탑의 인간상, 혹은 지식인의 운명(강사: 손정수)
8강 백남운, 쏘련인상 (1950)
- 당대 지식인의 대소 인식(강사: 이상호)
9강 배성룡, 농민독본 (1953)
- 농민민주주의의 실현, 농민의 단결과 각성을 촉구하다(강사: 김기승)
10강 김태오, 미학개론 (1955)
- 대한민국 건립 초 서구 미학사상의 유입(강사: 진중권)
11강 홍기문, 조선신화연구 (1964)
- 조선신화의 정체성 찾기(강사: 오세정)
12장 이종하, 우리 민중의 노동사 (2001)
- 민중이 주체인 역사(강사: 김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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