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아들 단군>은 오랜만에 만난 완성도 높은 창작동화이다. 강숙인 작가는 신화의 차원에 머물러 있던 단군의 이야기를 아름답고도 가슴 두근거리는 생생한 이야기로 되살려내었다. 사실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과연 단군의 이야기를 제대로 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작가는 고려와 조선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잊히고 왜곡되어 간신히 신화의 차원에서 숨만 붙이고 있는 단군의 이야기를 역사의 강물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우리 눈앞에 펼쳐 놓고 있다.
먼 북쪽 땅 초승달 모양의 호숫가에 해를 숭배하는 하늘 부족이 있어 환인 천제의 다스림 아래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7대 환인의 아들 환웅은, 새로운 땅에서 하늘의 도를 널리 퍼뜨려 사람들을 두루 이롭게 하려는 뜻을 품고는 무리 삼천 명에 검과 거울, 방울이라는 천부인(天符印)을 받아 동남쪽으로 떠난다. 그들은 보름달 모양의 큰 못이 있는 흰머리산 아래 터를 잡고 곰, 하백, 호랑이 등 여덟 부족과 동맹을 맺어 평화로운 시대를 연다.
하늘 부족 한의 아들인 해마루는 아버지 단웅 한으로부터 한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고, 곰 부족의 부루와는 형제와 같은 우정을, 그리고 하백 부족의 비오리에게는 가슴 설레는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야심 많은 호랑이 부족이 하백 부족을 공격하자 친구의 정혼녀인 비오리를 지키려다 부루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마루는 부모님은 물론 비오리마저 멀리 하며 호랑이 족장의 아들 금미르에 대한 분노심에 사로잡힌다. 아홉 부족이 두 패로 나뉘어 몇 년 동안 전쟁이 이어지자 단웅 한은 아홉 부족을 하나로 아우르는 한 나라를 세울 것을 제안하고, 새로운 나라를 이끌어나갈 단군왕검의 후보로 해마루와 금미르가 선택된다. 해마루는 새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하늘의 뜻을 깨치기 위해 흰머리산 하늘못으로 가던 중, 검과 거울 그리고 방울의 다른 뜻을 깨우치고 호랑이에게 습격당한 금미르를 구해주며 자신을 괴롭히던 미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늘의 아들 단군>은 생생하고도 아름답게 옛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재현해 내었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람과 사물들의 이름이다. 등장인물은 해마루를 비롯하여 비오리, 부루, 금미르, 불곰, 흰범, 수리, 시파람 등이고, 부족의 이름은 하늘, 하백, 곰, 호랑이, 사슴과 같이 우리말 이름을 멋지게 되살려내었다. 그 뿐 아니라 하늘 제사의 달, 꽃의 달, 씨 뿌리는 달, 사냥의 달, 바람의 달, 가을걷이의 달처럼 달의 이름을 그 특성에 맞게 멋들어지게 지었고, 그 외에도 싸울아비(무사), 으뜸 부족, 흰머리산, 하늘못 등 순수한 우리말로 된 이름들 덕분에 옛 조선의 모습이 더욱 실감나게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생생하게 살아난 것이 과연 이름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에서 살아난 것은 바로 단군이고, 단군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사랑하며 또 전쟁을 벌이는 속에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 단군 신화는 피가 돌고 살을 갖춘 역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환인과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몇 대에 걸쳐 머나먼 바이칼 호로부터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으로 바꾸어 냄으로써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신화의 차원으로 넘어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홍익인간과 천부인이라는 단군 이야기의 핵심 요소들을 눈으로 보듯 재현해내었다. 칼은 무리를 다스리기 위해서, 거울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또 방울은 우두머리의 명을 널리 펴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만, 해마루의 여정을 통해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 검을 잘못 쓰면 사람이 상하고 무리의 마음까지 잃게 된다는 것, 거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살펴 어리석음을 깨우치라는 것, 방울은 한의 위엄을 나타내는 동시에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 해마루는 하늘못에서 사람과 천지 만물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쁨의 춤을 춘다.
<하늘의 아들 단군>은 신화의 차원에 머물러 있던 단군의 이야기를 생생한 역사로 부활시켰고, 해마루가 진정한 하늘의 뜻을 깨달으며 마음 속 분노를 이겨내는 성장소설이며, 4천 년 전 선조들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빼어난 풍속소설이다.
[인상 깊은 구절]
마음 속에 칼을 품지 말아라. 네가 마음에 칼을 품는 한, 넌 금미르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다. 그리고 마음에 칼을 품고 있으면 그 칼이 다른 이를 해치기 전에 네가 먼저 다치게 된다. (113쪽)
하늘의 아들 단군 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소년 단군이 등장하고, 온갖 시련과 모험을 겪으면서 용기와 지혜를 갖춘 인물로 성장하는 주인공의 삶이 역동적으로 그려진 성장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단군할아버지가 아닌 인간 단군을 좀더 가깝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하늘의 아들 단군 에서 작가는 특유의 섬세한 감정과 풍부한 상상력을 훌륭하게 결합하고 있다. 인간 단군왕검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홍익인간’의 깨달음을 얻어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 있다.
먼 들판의 아지랑이
꽃의 달 아흐렛날 밤에
금미르
부루의 약속
먹구름
하늘 아래 가장 강한 부족
약속은 지켜야 한다
마음에 칼을 품고
이겨야 한다
떠나야 할 먼길
혼자가 아니다
거울을 닦고
방울, 하늘의 뜻
흰머리산 하늘못
해맑은 아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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